석탑으로는 목조탑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초기 양식의 익산미륵사지 석탑과, 균형이 잡힌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는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다. 미륵사지 탑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석탑으로서 9층이며, 우리나라 탑 건축의 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3. 신라 시대
한반도의 남동부를 차지한 신라는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지역적조건 밑에서 독자적인 미술문화를 이루었다. 신라의 미술은 조화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신라의 미술은 중국의 남조 문화와 고구려, 백제등과 접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특히 5세기 후반에 전래된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화려하고 독특한종교문화를 이룩하였으며 고분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에서 당시의 뛰어난 공예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신라의 미술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웃했던 고구려나 백제의 미술과는 달리 엄격하고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신라의 회화는 경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되기까지는 거의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고분들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서조도(瑞鳥圖), 우마도(牛馬圖)등을통해서 우리는 신라 회화의 뛰어남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그림들은 모두 화원의 작품이기보다는 공장에 의한 공예화였다.
불교 미술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늦게 시작하였으나, 이미6세기 후반에는 특유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7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의 불상은 삼화령미륵삼존석불(三化嶺彌勒三尊石佛)이나 황룡사지 출토의금동보살두(金銅菩薩頭)에서 처럼 밝은 표정을 보이지만 몸의비례나 옷의 처리등에는 여전히 추상성이 감돌고 있다.
신라 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대개가 매우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또 간혹 현대적인 감각을 풍겨주기도 한다. 금속 공예나 유리 공예와는 대조적으로 토기는 다소 조방하고 거칠며 문양은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이다. 그러나 기마 인물형 토기에서 볼 수 있듯이 조형성이 뛰어난 특성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에는 가야도 높은 수준의 미술을 발전시켰음이 금속공예나 이형토기(異形土器)등을 통해 확인된다. 고령지산동에서 출토된 금관이나 기마인물형토기 등을 예로 봐도 이를확인할 수 있다.
결론
방학이라 한국문학전집을 읽어야 하는데 방학중에 다 읽을 수 있게 줄여놓거나 압축 시켜놓은책... 힘들겁니다. 그러지 마시고 전집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한국문학은 연령이 조금 있다면 (중학생 이상) ...